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귤쨈, 마그마, 2019, 황동(블랙-C 착색), 깨진 시멘트, 7x6x2cm
귤쨈, 마그마, 2019, 황동(블랙-C 착색), 깨진 시멘트, 7x6x2cm
작업 개요

서울시의 개발 담론에 관한 문제의식을 느낀 11명의 미술작가들이 스스로를 ‘박원순 작가의 어시스턴트’로 규정하고 
서울시장 박원순을 ‘작가 박원순’으로 설정한 <박원순개인전>에서 선보인 작업이다. 
상품성이 없는 파치귤을 모아 25개의 황동오브제를 만들었고, 연마와 착색, 도금에 따라 빛나는 정도를 다르게 했다. 일부 작품은 향을 꽂을 수 있다. 

작업 노트 

지난가을 룸메이트로 은정 씨를 만났다. 지질학 연구소의 대학원생이었던 그는 졸업 논문을 마무리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은정 씨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 만난 지질학자다. 
그의 전공은 지구 속 마그마인데, 대학교 지하 연구실에 있는 용광로로 아주 작은 마그마를 만든다고 했다. 마그마는 지상으로 분출하기 전 몸속에 이산화탄소를 잔뜩 품는다. 
그리고 폭발과 함께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면서 돌도 되고 산도 된다. 조곤조곤 설명하는 은정 씨는 즐거워 보였지만, 연구소로 출근할 때의 뒷모습은 지쳐 보였다.

은정 씨는 제주도에서 태어났다. 제주도에 계신 그의 부모님은 겨울 내내 귤을 보내주셨다. 이웃에서 얻은 귤이기 때문에 품종이 다양했다. 
나는 공짜 귤을 실컷 먹으며 호들갑을 떨었다. 공짜라니! 이 귤들은 시장에 내다 팔 수 없는 귤, ‘파치’라고 했다. 
다 자라지 못한 밤톨만한 귤, 덩치가 너무 큰 사과만한 귤, 쭈글쭈글 시든 귤, 굴러 떨어져 터진 귤…… 100킬로 이상의 파치가 우리 집으로 왔다. 
두 박스씩 배달이 왔고, 다 먹어갈 때 즈음이면 다시 두 박스가 왔다. 우리는 겨우내 파치 귤을 먹었고, 은정 씨는 겨우내 마그마를 만들었다. 
어쩌지 못해 남겨진 상처들은 베란다 박스 속에서 하얀 곰팡이를 피웠다.

1월 6일, 일요일이었다. 
아침에 일어나 방문을 여는데 달콤하고 더운 기운이 훅, 풍겼다. 커다란 냄비에서 노르스름한 김이 올라오고 있었다. 
그리고 그 앞에 잠옷 차림의 은정 씨가 서 있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연구실에 나가던 마그마 박사가 부글부글 귤이 끓는 냄비를 젓고 있었다. 

나는 은정 씨를, 은정 씨는 나를 쳐다보았다. 

버리기 직전인 귤을 전부 갈아서 설탕과 함께 졸이고 있다고 했다. 귤색 거품을 걷어내면서 아주 약한 불로 천천히. 
바닥에 눌어붙지 않도록 천천히. 은정 씨는 주걱으로 냄비를 젓고 또 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졸이다가 물속에 한 방울 떨어뜨리면 끈적하게 떨어져 풀어지지 않는데, 그때가 완성이에요.” 

제주도에서는 먹다 남은 파치로 이렇게 귤쨈을 만든다고 했다. 은정 씨는 온종일 귤껍질을 까던 엄마와 남동생 이야기를 하며 뜨거운 쨈을 한 숟가락 건넸다. 
입안 가득, 진한 새콤함이 퍼졌다. 나는 식탁에 턱을 괸 채 베란다에서 곰팡이 꽃을 피우다 버려진 파치를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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